40쪽 분양 공고문을 AI가 읽어 세대별 가격표로 바꿨다

40쪽짜리 표를 손으로 옮기던 시절

분양 일을 하면 입주자모집공고라는 걸 봐야 합니다. 수십 쪽짜리 PDF인데, 그 안에 타입별·층별 분양가가 표로 잔뜩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동호수배치도라는 이미지가 따로 있어서, 어느 동 어느 라인이 몇 층까지 있는지를 눈으로 대조해가며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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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손으로 엑셀에 옮기다 보면 반나절이 훌쩍 갑니다. 눈이 침침해지고, 숫자 하나 잘못 옮기면 손님한테 틀린 가격을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일을 AI에게 넘겨봤습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공고문 PDF와 배치도 이미지를 넣으면 세대별 분양가 표가 자동으로 나옵니다. 그 지겨운 옮겨적기가 사라졌습니다.

AI가 ‘본다’는 게 무슨 뜻인가

핵심은 AI 비전이라는 기능입니다. 예전 AI는 글자만 읽었는데, 요즘 AI는 이미지를 보고 그 안의 표나 그림을 이해합니다.

저는 구글의 제미나이라는 모델의 비전 기능을 썼습니다. 사람이 배치도 그림을 보고 “아, 101동은 저층부터 고층까지 있고 라인은 세 개구나” 하고 파악하듯이, AI에게 그 이미지를 보여주고 “동·라인·층 범위를 뽑아줘”라고 시키는 겁니다. 스캔한 문서든 사진이든, 사람 눈으로 보던 걸 AI 눈으로 보게 하는 것. 이게 최근 몇 년 사이에 확 좋아진 부분이라, 예전엔 안 되던 게 지금은 됩니다.

처음엔 규칙으로 긁으려다 엎었습니다

사실 첫 시도는 이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PDF에서 표를 규칙으로 긁어내려 했습니다. “이 위치에 있는 숫자는 분양가다” 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에 규칙을 박아넣었죠.

그런데 공고문마다 표 생김새가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떤 건 층이 가로로, 어떤 건 세로로 적혀 있고, 병합된 칸도 제멋대로였습니다. 규칙을 하나 맞추면 다음 단지에서 깨졌습니다. 몇 번 씨름하다 방향을 바꿨습니다. 규칙으로 억지로 맞추지 말고, AI에게 표를 통째로 보여주고 “사람처럼 이해해서 뽑아줘”라고 시키자. 그게 지금 방식입니다. 붙잡고 있던 걸 버리는 것도 진도라는 걸 이때 배웠습니다.

두 갈래로 읽어서 하나로 합칩니다

이 작업의 요령은 자료를 둘로 나눠 읽힌 뒤 합치는 데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배치도 이미지를 읽혀서 ‘어느 동에 몇 층까지 있는지’라는 뼈대를 뽑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공고문 PDF를 읽혀서 ‘어떤 타입이 몇 층대에 얼마인지’라는 가격을 뽑습니다. 그다음 이 둘을 곱해서 세대별 표를 만듭니다.

이 ‘곱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동이 세 개, 층이 열다섯, 타입이 두 개면 조합이 수백 개 나옵니다. 사람이 일일이 계산할 수 없죠. 이걸 자동으로 펼쳐서 “101동 5층 84제곱미터는 얼마”까지 한 줄씩 만들어줍니다. 층 범위를 다루는 게 은근히 까다로웠습니다. 공고문은 “3층~10층 얼마, 11층 이상 얼마” 이런 식으로 뭉텅이로 적혀 있는데, 이걸 실제 층수만큼 낱개로 펼치는 계산을 따로 넣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한동안 씨름했습니다.

프롬프트를 파일로 관리하는 이유

같은 작업을 단지만 바꿔 반복하려면, AI에게 시키는 지시문(프롬프트)이 매번 똑같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시문을 코드 안에 박아두지 않고 별도 파일로 빼뒀습니다.

가격 뽑는 지시문, 배치 뽑는 지시문, 일정 뽑는 지시문, 옵션 뽑는 지시문을 각각 파일로 관리합니다. 새 단지가 오면 배치도와 PDF를 정해진 폴더에 넣고 명령 한 줄만 치면, 그 단지 이름으로 엑셀 파일이 자동으로 생깁니다. 지시문이 고정돼 있으니 결과 형식도 매번 같습니다. 이렇게 해두면 나중에 답이 이상할 때 어느 지시문을 고쳐야 하는지도 금방 찾습니다. 지시문을 여기저기 흩어두면 이게 안 됩니다.

100% 자동은 아닙니다 — 솔직히

과장하지 않겠습니다. 이 파이프라인이 자동으로 채워주는 건 ‘분양가 표’까지입니다. 타입별 면적, 일정, 발코니 확장, 유상옵션 같은 시트는 아직 사람이 확인해서 채웁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돈이 걸린 숫자는 AI가 뽑았다고 그냥 믿으면 안 됩니다. 공고문 표가 복잡하거나 스캔 상태가 나쁘면 AI도 한두 칸 틀립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사람 대신 다 해주는 기계’가 아니라 ‘초안을 순식간에 만들어주는 조수’로 씁니다. 반나절 걸리던 옮겨적기가 몇 분으로 줄고, 사람은 검토만 하면 됩니다.

부동산이 아니어도 원리는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이 분양업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원리만 가져가면 됩니다.

거래명세서를 정리하는 사장님, 손으로 쓴 주문서를 옮기는 식당, 스캔한 계약서를 표로 만드는 사무실. 전부 같은 구조입니다. 사람이 눈으로 읽어 옮기던 종이 문서를, AI 비전에게 “이 안에서 이런 항목을 뽑아 표로 만들어줘”라고 시키는 겁니다. 지시문을 파일로 고정하고, 마지막엔 사람이 검토하고. 지루한 옮겨적기를 AI에게 넘기고, 나는 확인과 판단이라는 ‘사람이 할 일’에 집중하는 것. 저는 이게 자영업자에게 가장 체감 큰 자동화 중 하나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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